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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옥류동 충정공 이홍술 대장 묘와 종가 터

덕흥대원군 가문 이야기

by 학당 2025. 4.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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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옥류동 충정공 이홍술 대장 묘와 종가 터

 

수락산 옥류동 장암(마당바위)과 충정공 이홍술 대장 종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567번지, 수락산 옥류동 장암(일명 마당바위) 일대는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종가 터이자 선영(사패지)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아는 이는 거의 없어 아쉬움이 크다.

이곳 청학리 장암(마당바위)은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종가 담존재(湛存齋) 별서가 있었던 곳이다. 담존재 별서는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종손이자 대한제국 원수부 국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해원(李海元) 종손(봉사손)이 말년에 거주하였던 마지막 종가 터이다.

충정공 이홍술(李弘述, 1647년(인조 25)∼1722년(경종 2))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노론 삼장신 중 한명이고, 연잉군(영조대왕)을 왕세제로 세우는데 역할을 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선(士善)이다. 제14대 선조대왕의 사친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5대손이며, 왕손 하원군 의헌공 이정의 현손이고, 종실 당은군 이인령의 증손이며, 종실 응천군 이돈(凝川君 李潡)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이석한(李錫漢)이며, 어머니는 호군(護軍) 경주인(慶州人) 김광익(金光翼)의 딸로 증 정부인 김씨(貞夫人 金氏)이다. 부인은 증 승지(承旨) 광산인(光山人) 김정탁(金廷鐸)의 딸로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김씨(金氏)이다. 백형 동돈녕 이홍일(李弘逸)은 백부 동돈녕 이정한(李挺漢)에게 출계하여 덕흥대원군 사손 즉 도정궁 사손이 되었다.

이해원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 부령과 원수부 국장을 역임하였고, 군 해산 이후 고향인 청학리 옥류동 선영으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유유자적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별내면 면장을 맡았고, 이때 별내 지역에서도 3.1운동이 일어나 참여하였다가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심문과 태형 50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또한 의친왕의 상해 망명과 관련된 대동단 사건 때에는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다가 다시 일본 헌병대의 심문을 받는 등 끊임없는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렇듯 청학리 계곡, 곧 옥류동 장암(마당바위) 일대는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충정공 이홍술 대장 종가와 독립운동의 숨결이 서린 뜻깊은 장소이다.

바로 인근 라플렌 카페 권역에는 '도정궁 별서'가 있었고, 이 일대 전체는 덕흥대원군(도정궁가)의 사패지였다. 또한 옥류동 둔덕에는 조선 제15대 광해군의 세자였던 폐세자 이지(李祬)의 묘소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이러한 깊은 역사성은 잊히고, 단지 여름철 청학동 계곡 휴양지로만 알려져 있어 매우 안타깝다.

청학리 옥류동 초입에 외롭게 서 있는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신도비(神道碑)는 이곳이 충정공가 선영이었음을 겨우 알리는 유일한 흔적이다.

본래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종가는 서울 삼청동 에 있었고, 종가는 담존재(湛存齋)라고 한다. 청학리의 담존재 별서는 재실과 별서로 활용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독립운동가 이해원 종손이 이곳으로 낙향하여 충정공가 마지막 종가의 맥을 이어갔다.

충정공 이홍술 대장 가문에서는 과거 급제자와 이름난 분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인물들은 담존재 이명익(충정공 종손), 감사 이형규, 장신록에 등재된 충정공 이홍술 대장, 이당 대장, 이재봉 대장(충정공 종손) 세분이 있고, 독립운동가 원수부 국장 이해원 장군(충정공 종손) 이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표식이나 안내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시 당국에서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신도비 인근과 장암(마당바위) 일대에 충정공 종가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이라도 설치하여, 이 지역의 깊은 역사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덕흥사적연구회장 이학주 씀.

 

노론 삼장신 중 한명인 충정공 이홍술 대장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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