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어사(統禦使) 이홍술(李弘述) 지음.
驚聞㓙報自南來(경문재보자남래) / 놀랍게도 흉악한 소식이 남쪽에서 전해지니,
不爲私情重惜才(불위사정중석재) / 사사로운 정 때문이 아니라, 그 재능을 애석히 여긴다.
早展驥蹄將遠歩(조전기제장원보) / 이른 아침 천리마의 발굽을 펼쳐 멀리 나아가려 했으나,
晩𡸁鵬翼竟低回(만렴붕익경저회) / 저녁엔 붕새의 날개조차 끝내 꺾이고 말았구나.
平戎壯畧歸何處(평융장략귀하처) / 전쟁을 평정할 장대한 계책은 어디로 돌아가며,
報國忠精八夜䑓(보국충정팔야대) / 나라를 위한 충성스런 정성은 팔야(八夜) 진영에 남아 있구나.
帳望南天雲萬里(장망남천운만리) / 진영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니,
不禁哀淚暎雙腮(불금애루영쌍시) / 애끓는 눈물이 두 뺨을 적시니 참을 길 없구나.
충정공(忠定公) 이홍술(李弘述, 1647년~1722년)은 조선 중후기 무신이자 노론 삼장신(三將臣) 중 한명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사선(士善)이다. 제14대 선조대왕의 사친 덕흥대원군의 5대손이고, 왕손 하원군 의헌공 이정의 현손이다. 증조는 도정궁 사손 종실 당은군(唐恩君) 이인령(李引齡)이고, 조부는 도정궁 사손 종실 응천군(凝川君) 이돈(李潡)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이석한(李錫漢)이고, 어머니는 호군 김광익(金光翼)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형은 도정궁 사손 동돈녕 이홍일(李弘逸)· 증 승지 이홍달(李弘達)이다.
부인은 김정탁(金廷鐸)의 딸 광산김씨(廣山金氏)이며, 아들은 증 이조참의 이세희(李世禧)이다. 사위는 심수징(沈壽徵)·조명복(趙明復)이다.
증 이조판서 이석한의 3남으로 1647년(인조 25)에 태어났다. 1675년(숙종 1) 증광시 무과에 병과 10위로 급제하였고, 1676년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 직후 부호군이 되었고, 1680년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창성부사와 선천부사를 거쳐 1684년 호군이 되었고, 1686년 소강첨사에 임명되었다. 1687년 경상우병사와 황해병사를 역임하였다. 1691년 길주목사를 지내고 1692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1697년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였고, 1699년에는 총융사가 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부총관·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1711년 평안도병사로 재임 시 왕명으로 평양과 안주의 성첩을 수리하였고, 평양의 초연대와 안주의 만경루도 증축하였다. 1719년 훈련대장 재임 시에는 통신사를 통해 각궁(角弓)의 원료인 흑각의 무역을 주장하였다. 김창집(金昌集)을 비롯한 노론의 입장에서 국정 활동을 하여 반대파의 공박이 심해져 1721년(경종 원년)에는 훈련대장에서 파출되었다. 1722년(경종 2) 목호룡(睦虎龍)이 경종(景宗) 독살의 주범이라고 이홍술을 고변하여 국문을 받다가 옥사하였다.
725년(영조 1) 신원되어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었고, 1741년 충정(忠定)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고종조에 신주는 국가에서 불천지위 지정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청학동계곡 옥류동(사기막) 좌이다. 현재는 묘소는 망주석 한쪽만 써 있는 상태이며, 묘소 아래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충정공 이홍술 대장의 신도비는 남양주시 별내면 순화궁로945번길 65[청학리 산90-1]에 있다.
2. 침류정 장우상
침류정(沈流亭) 장우상(張宇相, 1642년(인조 20)~1708년(숙종 34))은 조선 중후기 칠곡 출신의 무신으로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우환(羽寰), 자는 보경(補卿), 호는 침류정(沈流亭)이다. 고려 초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동장씨이다.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의 손자이며, 증 가선대부 장원(張厡)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산곽씨이다.
부인은 흥양이씨이다.
증 가선대부 장원의 아들로 1642년(인조 20) 탄생하여 1672년(현종 13)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364위(411/553)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부장·훈련원주부·판관 등을 거처 북진첨사(北鎭僉使)로 나아갔으나 곧 사임하고 돌아왔다. 1689년(숙종 15)에 다시 오위도총부 경력 겸 훈련원 첨정이 되고, 1690년에 통영우후로 나갔다가 우림위장(羽林衛將)의 중앙 관직으로 옮겨왔다. 그 후 1691년(숙종 17)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 1693년(숙종 19)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1708년(숙종 34)에 별세하자 10월 5일에 나라에서 제문(祭文)을 내렸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 온조골에 있다.
관련 문집은 실기(實記) 1권과 유집(遺集)이 있고, 유적지로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에 추모지소인 침류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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