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종실 익성군부인 양녀 응례(宗室 益城君夫人 良女 應禮) 묘 - 종실 창선대부 행 양산수 봉재랑 이인경의 생모

덕흥대원군 가문 이야기

by 학당 2023. 10. 19. 00:37

본문

728x90
반응형

종실 익성군부인 양녀 응례(宗室 益城君夫人 良女 應禮) 묘

(종실 창선대부 행 양산수 봉재랑 이인경의 생모)

 

종실 익성군부인 양녀 응례(宗室 益城君夫人 良女 應禮, ?년-?년)은 조선중기 왕실의 여인으로 본관은 미상, 이름은 응례(應禮)이다. 제14대 선조대왕의 사친 덕흥대원군의 손자이자 도정궁주 왕손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의 2남인 종실 익성군 이향령(益城君 李享齡)의 후실이다.

광해군 때 종실 익성군의 3남 진릉군 이태경이 왕위 물망에 올라 역모하였다고 하여 집안 화가 미쳤는데 아래와 같다.

1612년에 대북파는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소북파를 제거하려고 무옥을 일으켰다. 황해도 봉산군수 신율(申慄)은 병역을 피하려다 붙잡힌 김경립(金景立)을 체포하여 유팽석(柳彭錫)을 시켜서 무옥을 꾸미게 하였다.

김경립은 이들이 꾸민 각본에 따라 아버지 김직재(金直哉)의 실직(失職)에 불만을 품은 김백함(金百緘)을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였다. 이로써 김직재·김백함 부자와 김직재의 사위 황보신(皇甫信) 등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김백함 자신이 모역의 주모자라고 허위자백하면서, 그들이 왕으로 추대한 인물은 진릉군 이태경이라고 진술하였다.

광해군은 당시에 순화군의 장인인 황혁(黃赫)이 신천(新川)에 유배되어 생활하고 있었기에 진릉군이 역모에 가담된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역모죄로 다스렸다.

그리하여 진릉군 이태경은 19세 나이로 절도에 위리안치되고 뒤에 사사(賜死)되었다. 그리고 일가족과 형제도 연좌되어 진산군 이순경(李順慶)은 강진에, 진천군 이희경(李喜慶)은 사천에, 진평부정 이승경(李承慶)은 흥양에, 양평수 이득경(李得慶)은 이이산(李理山)에 각각 정배되었다.

이 김직재 옥사에 연류되어 익성군부인 양녀 응례도 역시 유배나 관노비가 되지 않을 까 한다. 인조조 때 진릉군 이태경이 무고 함이 밝혀져 일가족 모두는 신원되었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5남 양평수 이득경(楊平守 李得慶), 8남 양산수 이인경(楊山守 李仁慶), 9남 양릉수 이의경(楊陵守 李義慶)을 두었다. 묘소는 김포 월곶면 용강리 내 아들 종실 양산수 묘역 아래에 있다.

종실 익성군 이향령의 부인 양녀 응례 묘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