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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3.1運動) 애국지사(愛國志士) 이환응(李瓛應, 1894년-1971년)

덕흥대원군 가문 이야기

by 학당 2023. 9. 2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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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3.1運動) 애국지사(愛國志士)

이환응(李瓛應, 1894년-1971년)

 

이환응(李瓛應, 1894년-1971년)은 항일 운동한 애국지사로 본관은 전주, 휘는 환응(瓛應), 자는 공집(公執)이다. 덕흥대원군의 11대손이며, 종실 중의대부(中義大夫) 진산군(珍山君) 이유령(李有齡)의 9대손이고, 종실 영안군(靈安君) 이수(李洙)의 8대손이다. 이형수(李亨修)의 증손이며, 이용(李溶)의 손자이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제(李濟)의 친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원식(李元植)이고, 어머니는 안동인(安東人) 권두수(權斗洙)의 딸로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해주인(海州人) 최원심(崔元心)의 딸로 해주최씨(海州崔氏)이다. 생부는 이종식(李宗植)이고, 생모는 신창인(新昌人) 맹학순(孟學淳)의 딸로 신창맹씨(新昌孟氏)이다.

 

원식의 독자로 갑오(甲午) 1894년(고종 31) 8월 20일 경기도 의왕시 상청계동에서 탄생하였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 1861년-1922년) 등 33인이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삼일 독립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시기 시작하여 상청계 마을에서도 성주복(成周復, 1894년-1971년), 이봉근(李鳳根, 일명 이복영(李復英)), 사촌 이연응(李璉應), 5촌 이구응(李龜應), 8촌 이도응(李道應), 이춘응(李春應) 등과 같이 삼일 독립운동을 하였다.성주복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여 징역을 살고, 추후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8촌 이춘응 선생은 삼일운동 당시 일제 군인의 총을 맞고 순국하였으며, 이봉근 선생은 하족부에 부상을 입어 일생을 의족으로 살고, 공(公)과 이연응, 이구응, 이도응 선생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으며, 8.15 광복을 맞을 때까지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 분들의 3.1 독립운동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이 지역 향토사학자이자 전주이씨 덕흥대원군파 대종회 고문을 지낸 이재승 선생이 2008년 6월 6일 청계동 산 21번지 작은 고개 중턱 길 옆에 ‘3.1 독립열지사비’를 세워 7분의 독립운동과 항일 의지와 애국정신을 알리고 있다.

 

1971년 12월 12일 향년 78세로 별세하여 묘소는 제14대 선조대왕의 백형 왕손 하원군 이정의 배위 진산현부인 이씨 묘소 아래 동향으로 모셨다.

 

배위는 경주인(慶州人) 이우홍(李優弘)의 딸로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임진(壬辰) 1892년(고종 29) 3월 15일 탄생하여 1913년 4월 5일 향년 22세로 별세하였다. 묘는 합폄하였다.

 

계배는 괴산인(槐山人) 음원식(陰元植)의 딸로 괴산음씨(槐山陰氏)로 정유(丁酉) 1879년(고종 16) 7월 11일 탄생하여 1971년 5월 11일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 묘는 상동 태안곡 남향이다. 자녀로는 4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이재학(李載學), 차남 이재섭(李載燮), 3남 이재명(李載明), 4남 전주이씨 덕흥대원군파 대종회 부회장 이재록(李載祿), 1녀는 이정은(李貞恩)으로 달성인(達城人) 서재홍(徐載鴻)에게 출가하였다.

덕흥사적연구회장 이학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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