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부인 전주이씨(貞敬夫人 全州李氏, 1797년~1873년)은 조선 후기 도정궁가(都正宮家)의 딸로 본관은 전주이다. 제14대 선조대왕의 사친 덕흥대원군의 12대 손녀이며, 도정궁 8대 사손 증 좌찬성 이형종(李亨宗)의 증손녀이고, 제19대 숙종대왕의 제6왕자 연령군 이훤의 양손자로 출계하였던 달선군(達善君) 이영(李泳)의 손녀이며, 도정궁 9대 사손 판돈녕부사 이풍(李灃)의 친손녀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옥이고, 어머니는 진사(進士) 경주인(慶州人) 김낙원(金樂元)의 딸로 공인 경주김씨(恭人 慶州金氏)이다. 도정궁 13대 사손 경원군 이하전의 고모이며, 대한제국 초대 고종태황제의 외할머니이다. 친오빠는 현감 이시학(李時學)이고, 친동생은 도정궁 12대사손 완창군 이시인(李時仁)이다.
통덕랑 이옥의 따님으로 정사 1797년(정조 21)에 탄생하여 어린 시절 제14대 선조대왕의 잠저 도정궁에서 성장하여 첨지중추부사 여흥인 민단현(閔端顯)의 아들 민치구(閔致久)와 길례를 올리고, 정경부인(貞敬夫人) 까지 올랐다. 계유 1873년(고종 10) 11월 17일 향년 77세로 별세하자 외손자 고종은 아래와 같이 전교하였다.
전교하기를, "민 판돈녕부사(閔判敦寧府事)의 부인이 죽었다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여러 해 동안 몹시 병환이 위중하였으나 그래도 병이 나으리라 기대하였는데 갑자기 소식을 듣게 되니 내 마음은 몹시 슬프다. 부대부인(府大夫人)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이길 수 없다.
동원(東園)의 관 1부를 골라 보내고 돈 1000냥, 쌀 30섬, 무명과 베 각각 5동, 비단 등속 5끝과 전칠(全漆) 1말을 호조(戶曹)를 시켜 실어 보내게 하고, 특별히 3등 예장(禮葬)을 치러주고, 중사(中使)를 보내어 호상(護喪)하게 하고, 성복일(成服日)에는 내시(內侍)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며, 제문은 전 대제학(大提學)이 지어서 바치라." 하였다.
묘소는 용인 기흥면 신갈리 갈곡(葛谷) 계좌(癸坐)로 합폄하였다.
자녀로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증 의정부 의정 민태호(閔泰鎬), 차남 민승호(閔升鎬)이니, 명성황후 여흥민씨의 사친 민치록(閔致祿)에게 출계하였다. 3남 민겸호(閔)는 계정(桂庭) 민영환(閔泳煥)의 친아버지이다. 민영환은 백부 민태호에게 출계하였다. 민겸호의 2남은 민영찬(閔泳瓚)이다. 장녀는 고종태황제의 사친 여흥부대부인 민씨이자 흥선대원왕의 부인이다. 차녀 청송인 심응택(沈應澤)에게 출가하였다.
덕흥사적연구회장 이학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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