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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궁 사손 돈녕도정 증 이조참판 이세정 선생 묘

도정궁 이야기

by 학당 2023. 3. 1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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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녕도정 증 이조참판 이세정 선생 묘

敦寧都正  吏曺參判 李世禎 先生 

 

 

이세정(李世禎, 1661년 - 1721년)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귀족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세정(世禎), 자는 국경(國卿)이다. 덕흥대원군의 6대 사손(嗣孫)이며,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이홍일(李弘逸)이고, 어머니는 정랑(正郞) 기계인(杞溪人) 유삼(兪木+參)의 딸로 정부인 유씨(貞夫人 兪氏)이다. 

부인은 부제학(副提學) 청송인(淸松人) 심유(沈攸)의 딸로 증 정부인(貞夫人) 청송심씨(淸松沈氏)이다.

동돈녕 이홍일의 장남으로 신축(辛丑) 1661년(현종 2) 10월 18일 탄생하였다. 1695년(숙종 21) 2월 28일 숙종대왕(肅宗大王)이 친히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사묘(私廟, 덕흥궁德興宮)에 나아가 전배례(展拜禮)를 행하고, 공의 아버지 봉사손(奉祀孫) 돈녕도정(敦寧都正) 이홍일(李弘逸)과 회원군(檜原君) 이윤(李倫)과 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에게 가자(加資)할 것을 명하고, 또 해조(該曹)에 명하여 이홍일의 장자(長子)에게 벼슬을 제수하도록 하여 장릉(長陵) 참봉(參奉)에 제수되었다.
1698년(숙종 24) 1월 24일 제용 봉사(濟用奉事)에 제수되었다. 이해 5월 18일 장릉(長陵)에 문제가 있다는 장령(掌令) 어사휘(魚史徽), 지평(持平) 이성조(李聖肇)·이세유(李世維)의 계(啓)로 나문정죄(拿問定罪)되기도 하였다. 이해 8월 11일 숙종대왕(肅宗大王)이 선정전(宣政殿) 주강(晝講) 때 특진관(特進官) 이언강(李彦綱) 등과 제용 봉사(濟用奉事)로 입시하여 성학집요(聖學輯要)의 진강(進講)에 참여하였다.
기묘(己卯) 1699년(숙종 25) 6월 24일 사재 직장(司宰直長)에 제수되고, 이해 사마 양시(司馬兩試)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2등(二等) 22위와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3등(三等) 16위에 급제하고, 이해 문과(文科)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2위에 급제하였으나 이때 과옥(科獄, 기묘과옥(己卯科獄))에 연류되어 1701년(숙종 27) 차술(借述)의 죄를 범하였다고 용천부(龍川府)에 충군(充軍)되었다가 다시 의주부(義州府)에 정배(定配)하여 충군(充軍)이 되었다. 1705년(숙종 31) 숙종대왕이 특명으로 의주 충군(義州充軍)되어 있는 이세정을 석방하라고 하였으나 사간원(司諫院)에서 반대로 안되었으나 1706년(숙종 32) 석방되고 정계(停啓)되었다.
1721년(경종 1) 2월 13일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봉사손(奉祀孫) 세습 제도로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에 단부(單付)되었다. 이해 3월 4일 사은(謝恩)받고 이해 6월 30일 향년 60세로 별세하였다.

1723년(경종 3) 1월 24일 사신에게 우리나라의 시부·책문 문체를 보여 주었는데 부칙(副勅)이 동국(東國)의 시부(詩賦)·책문(策文) 문체(文體)를 보기를 요구하므로 예문관(藝文館)으로 하여금 책(策) 하나와 부(賦) 2편과 시(詩) 3수(首)를 초선(抄選)하여 보이게 하니,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천도책(天道策)과, 민제인(閔齊仁)의 백마강부(白馬江賦),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칠석부(七夕賦)와, 고(故) 영상(領相) 이항복(李恒福)의 읍송거시재복아(泣送去時在腹兒)와 김창흡(金昌翕)의 와념소유언(臥念少游言)과 이세정(李世楨)의 답조낙모(答嘲落帽)의 시를 보여주었다.

후에 가의대부(嘉義大夫) 이조참판(吏曺參判)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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