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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이거(永陽君) – 중종의 아들이자 선조의 큰아버지, 조선 왕실의 가교

조선 왕실 이야기

by 학당 2025. 3. 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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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이거(永陽君) – 중종의 아들이자 선조의 큰아버지, 조선 왕실의 가교

 

1. 영양군 이거의 생애

영양군 이거(永陽君 李岠, 1521년 ~ 1561년)는 조선 중기의 왕자로, 제11대 중종대왕의 4남이자 창빈 안씨(昌嬪 安氏)의 소생이다. 그는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친형이며, 조선 제14대 선조(宣祖)의 큰아버지이다.

1521년(중종 16년) 4월 24일에 태어나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졌다. 왕자로서 직접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왕실 가문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561년(명종 16년) 7월 27일,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과천 동작리 즉 서울 현충원 내 창빈묘 우강(右崗) 사좌(巳坐)에 안장되었다. 후에 장단에 이장하여 현재 북한 지역에 있다. 시호는 ‘성도(成悼)’ 이다. 그의 사당은 영양사로 곡성에 있으며, 후손들이 매년 제향을 지낸다.

그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기에, 조선 왕실의 전통에 따라 양자 흥녕군 이수전을 입양하여 가계를 유지하였다.


2. 가족 관계

1) 직계 가족

  • 아버지: 중종대왕(中宗大王)
  • 어머니: 창빈 안씨(昌嬪 安氏)
  • 동생: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2) 배우자 및 후손

  • 부인: 경양군부인 안씨(景陽郡夫人 安氏)
    • 순흥 안씨(順興安氏) 출신, 사포서(司圃署) 사포 증 찬성(贊成) 안세형(安世亨)의 딸
  • 양자: 흥녕군(興寧君) 이수전(李秀荃)
    • 성종대왕의 12왕자 무산군(茂山君) 이종(李悰)의 손자
    • 무산군의 6남 부안군(扶安君) 이석수(李碩壽)의 아들

3. 시대적 배경 – 조선 중기의 정치 변화

영양군 이거가 살았던 조선 중기는 정치적 혼란과 왕권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1) 중종과 사림파의 성장

중종(재위 1506년~1544년)의 시대는 사림파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진출한 시기였다. 중종반정(1506년)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중종은 조광조 등 사림파를 중용하였지만, 기묘사화(1519년)로 인해 사림파가 대거 숙청되는 등 정치적 변동이 있었다.

2) 명종 시대의 외척 세력 강화

영양군 이거가 별세한 1561년은 명종(재위 1545년~1567년) 시기였다. 명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그의 어머니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섭정이 강력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외척 세력인 윤원형(尹元衡)이 득세하여 정국을 장악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왕실 내부에서도 세력 다툼이 있었으며, 영양군 이거는 직접적인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동생 덕흥대원군의 가계에서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 영향력이 간접적으로 이어졌다.


4. 영양군 이거의 역사적 의미

영양군 이거는 조선 중기의 왕자로서 직접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가계는 조선 왕실의 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선조의 큰아버지: 그의 동생 덕흥대원군의 아들인 선조가 조선 제14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영양군 이거는 선조의 큰아버지로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왕실 혈통 유지: 그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지만, 성종대왕의 후손인 흥녕군 이수전을 양자로 삼아 가계를 유지하였다.

조선 왕실 계승의 중요한 가계: 그의 가계는 후대 왕실과 깊이 연결되면서 조선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5. 결론

영양군 이거(永陽君 李岠)는 조선 중기의 왕자로, 중종대왕의 4남이자 덕흥대원군의 형으로서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계는 선조대왕과 연결되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중종과 명종 시대의 정치적 혼란과 외척 세력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시기였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가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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